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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세계 최고이자 미쉐린 별에 빛나는 덴마크의 노마
레스토랑 노마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가 햄버거 출시
코로나19로 록다운 되자 고민했다는 그
“거창한 코스보다 그리운 일상 음식이 주목받을 듯”
파인 다이닝 노마→ 버거 체인점 되었지만
그의 버거는 특별해…누룩 사용한 패티로 승부
봉준호 감독이 당신의 결혼식 날 웨딩비디오 촬영 기사로 나타났다고 상상해보자. 아니면 방탄소년단(BTS)이 길 한복판에서 인디밴드처럼 버스킹을 시작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것에 비견되는 일이 음식업계에 있다. <미쉐린 가이드> 별 두 개에 빛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노마(NOMA)의 셰프인 르네 레드제피가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경악한 이유가 있다. 북유럽 식문화사를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그 셰프가, 2012년 미국 <타임> 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힌 바 있는 그 셰프가 햄버거 패티를 뒤집는다니. 레스토랑 노마에서 음료를 포함하여 한 끼 식사를 하려면 예산을 1인당 50만원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버거는 ‘단돈’ 2만3000원이다. 아무리 비싼 스칸디나비아 물가를 적용했다고는 하나 버거치고는 비싼 편이다. 결코 ‘착한 가격’이라 할 수 없지만, 노마의 다른 음식에 견주면 이런 할인가가 없다. 마침 나는 노마 근처에 살아서 셰프의 계획을 듣고 어떻게 되고 있나 궁금해서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록다운 기간에 계속해서 제 자신에게 질문을 했지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과연 뭘까. 내가 지금 제일 그리운 것이 뭘까.” 레드제피는 노마를 햄버거 체인점으로 리모델링해서 오픈하기로 결심한 그 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용히 앉아서 찔끔 끊임없이 계속 나오는 코스 요리 같은 건 하나도 그립지 않더군요. 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부대껴 즐기던 시간이 미치도록 그리웠어요.” 나는 그가 맞았다고 본다. 록다운이 해제되고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람들은 이웃과 함께하는 것과 신나고 즐거운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평범했던 시절에는 너무나 평범해서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시기가 올 때까지 몰랐던 일상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되돌리려고 할 것이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든 따라잡으려 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사람들은 더 이상 맛집 원정단인 양, 레스토랑 개척자인 양, <대장금>의 장금이로 빙의해서 자기네 앞에 있는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느라 시간을 허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레드제피는 나에게 노마의 버거가 왜 특별한지, 다른 버거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노마의 버거는 조리의 전문성을 확보했으며(셰프가 뒤집는 햄버거 패티라니!) 고기의 질 역시 남다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비밀 병기 같은 재료 한 가지가 더 들어간다고 했다. 나의 몇 가지 질문을 더 받고 난 뒤에(이래 봬도 나는 <한겨레>에 연재하는 푸드 칼럼니스트다) 레드제피는 그 비법의 재료가 무엇인지 털어놓았다. 그건 바로 발효시킨 쇠고기라고 했다. 발효시킨 뭐?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발효시킨 쇠고기. 쇠고기를 숙성시키는 에이징이 아니고 썩는 것과 종이 한장 차이인 발효 말이다. 자투리 고기에 미소된장, 간장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코지(koji)라는 일본 누룩 균을 섞고 기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6개월간 썩힌다고, 아니 발효시킨다고 했다. 두 번째 비법은 햄버거 번을 만들 때 감자를 써서 햄버거 빵이 고기 육즙 등 속재료 때문에 눅눅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레드제피도 우리처럼 똑같이 코로나19 록다운 때문에 두통을 앓았다고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다행히 덴마크 정부가 마음껏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서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레드제피는 올해 매출이 반토막 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볼 때 2022년까지 정상화되기 힘들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지만,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아직도 재미있고 창의적이며 동료애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른 고급 레스토랑 종사자들에게는 이런 조언도 했다. “부디 유연하게, 그리고 즉흥적으로 대처하기를. 옛 영광의 왕관의 무게에 깔려 압사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덴마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완화하기 시작했다. 음식점은 4월 중순부터 재개장했고, 카페와 바는 5월 중순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정부의 대응이 다소 소극적인 게 아닌가 싶었다. 마치 야생에서 구조된 동물을 갑자기 밝은 빛으로 돌려보내 눈을 끔벅끔벅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 그보다는 겨우내 축사에 갇혀 있던 소들을 봄에 방목지에 풀어놓은 것 같았다. 소들은 들판에서 기뻐서 소리 내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텐데. 그런 것처럼 요식업계는 즉시 반응했다. 그리고 덴마크 사람들의 대응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들은 대로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한 경관이 지난 화요일에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인 <폴리티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코펜하겐에서는 아직까지 1m 거리두기 규칙을 어겨 벌금이 부과된 레스토랑이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한다. 노마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진정 삶을 바꾸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노마에 다녀오면 아마 몇 달 동안 그 음식의 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동안 계속 생각날 수도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노마에서 먹었던 것은 솔방울이었다. 전설의 셰프와 그가 이끄는 주방사단이 능력을 한껏 발휘해서 조리한 것이 분명했지만, 어떻게 먹어도 그건 솔방울이요, 솔방울 맛이었다. 이런 노마 셰프 사단이 비교적 헐값(?)에 내놓게 될 메뉴는 과연 어떤 것일까? 미리 말해야겠다. 나는 채식주의자용 버거에는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낀다. 레드제피의 쇠고기는 훌륭하다. 육즙이 좌르르 흐르는 그 비범한 감칠맛이라니! 레드제피는 나의 시답지 않은 쪼잔한 비평을 관대한 마음으로 다 들어주었다. “피클이 더 있어야겠는데요?” 등등. 그러다 묵직하게 한마디 남겼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다음 달부터 햄버거집 사장 말고 <미쉐린 가이드> 셰프로 돌아오면 어떻겠냐고 말이죠.” 나는 욕을 꿀꺽 삼켰어요. “뭐라고! 어떤 놈들이 감히 내가 버거를 먹여주는데도 토를 달아! 다시 솔방울을 주랴! 하지만 아시잖아요. 사실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사람들은, 우리는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이라는 점을요. 그리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은 것을 말이에요.”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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