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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28, 2020

존 버거 “나의 유일한 조국은 말이다” : 학술 : 문화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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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26) 존 버거(1926~2017)

‘보는 방법’ 4부작, 예술계 강타
지옥같은 기숙학교 중도 탈출 등
한마리 늑대처럼 자유로이 살아

도시로 이주한 농민, 노숙인 등
삶의 구석구석 체험하며 기록
소박한 체험자로 이야기 들려줘

존 버거. <한겨레> 자료사진
존 버거.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만 버거로 부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버저로 발음되는 영국 출신의 작가는 <지>(G)라는 소설로 1972년 부커상을 받은 뒤 수상 연설에서 그 상금이 카리브 지역을 착취하여 번 부커 재벌의 돈이라고 폭로하면서 그 반은 블랙팬서(흑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설립된 무장 조직) 영국 지부에 기부하고, 나머지 반은 이주노동자를 연구해 3년 뒤에 낸 <제7의 인간> 집필을 위해 썼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조국, 그것은 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영국을 떠나 후반생을 알프스 산자락 시골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보냈다. 몇해 전 여름, 내가 번역한 그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를 보내면서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자기도 여행을 떠난다면서 나중에 보자고 하는 따뜻한 답을 보내주었는데 2017년 90살로 사망했다. 그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한마리 늑대처럼 살다가 죽었다. 산골짜기에서도 새들이 날아드는 헛간에 살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죽었다. 평생 패거리를 만들지 않은 탓으로 그를 영웅시하는 조사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집이 가족이 사는 시골집이 아니라 그곳에서 몇 시간 걸리는 파리 근교, 반평생 함께 작업한 러시아 출신의 여배우인 작가가 사는 집이었다는 정도의 이야기 외에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도 없었다. 36살 때 영국 떠나 프랑스 정착 90살 평생의 후반이 시작하는 46살이 된 1972년은 그에게 여러가지로 뜻깊은 해였다. 그가 각본, 출연, 제작까지 하고 그해 <비비시>(BBC)에서 방송된 뒤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보는 방법>(Ways of Seeing) 4부작은 책으로 출간돼 미술, 나아가 예술을 보는 안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불필요하게 난해하고 교만한 예술과 그것을 조장해온 예술계를 일거에 타도하고, 평온하고 유쾌한 해설을 통해 예술과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쉽게 이해하게 했을 뿐 아니라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부각시킨 그 책은 우리말로 몇번이나 번역되었으나 그의 견해가 우리의 예술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은 비사회적이고 계급적이기 때문이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간격은 사회의 양극화처럼 더욱 커져서 사대적 고급예술이 예술을 독점하는 가운데 대중은 기껏 전통가요라는 이름의 ‘뽕짝’이나 폭력영화의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90살 평생의 전반은 1926년 런던에서 태어난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6살 때부터 옥스퍼드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스스로 파시스트 지옥으로 묘사한 그곳을 10년 뒤 박차고 나왔다. 학교 공부 대신 하디, 디킨스, 모파상, 체호프, 헤밍웨이, 그리고 크로폿킨을 포함한 많은 아나키즘 고전들을 열심히 읽었고, 14살 때에는 아나키스트 시인인 허버트 리드에게 자작시 몇편을 논평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18살부터 2년간 역시 지옥인 육군에 끌려가 2차대전을 체험하면서, 그리고 1차대전에 참전하여 실패자가 된 아버지를 통해 그 참상을 알면서 세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암흑일 뿐이라고 여겼다.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는 그 전쟁에 너무 가까웠어/ 죽은 자들의 모습으로 태어나/ 겨자 가스에 싸여/ 구덩이에서 먹었어”라고 노래했다. 전장에서 그는 사회주의 아나키스트로 다시 태어났지만 평생 어떤 정치조직에도 들어간 적은 없다. 그는 잠시 미술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은 16살 기숙학교 중퇴로 끝났으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기껏 중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32살부터 조지 오웰이 편집장으로 있던 신문사에서 매주 미술평을 쓰고 소설을 쓴 것을 시작으로 모든 장르의 글을 썼다. 그가 쓴 평론 중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화가가 아니라 무대 매니저로 혹평한 것도 있었고, 1958년에 쓴 첫 소설인 <우리 시대의 화가>는 반공주의자들의 반대로 회수되기도 했다. 1956년의 헝가리 혁명을 다룬 그 소설에서 그는 당대의 냉전 분위기와 달리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도시 생활의 소외와 우울을 묘사한 소설들을 낸 뒤 1962년 영국을 완전히 떠나 프랑스로 갔다. 그의 나이 36살 때였다. 그 무렵 이혼을 했고 영국 중산층에 극도로 염증을 느낀 탓도 있었지만, 카뮈와 같이 그가 존경한 작가들의 나라에 살면서 영국에서도 계속 글과 방송을 할 수 있어서였다.
존 버거. 위키피디아
존 버거. 위키피디아
당시에 쓴 글들을 보면 그가 영국을 정말 싫어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에도 영국의 문학이나 미술에 대해 찬양하기는커녕 언급하는 것조차 거의 볼 수 없다.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는 방법>에서도 비판적인 주장의 소재로 영국 것이 언급될 뿐이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아니 세상 전체가 그에게는 암흑이었다. 그의 모든 글은 유배와 변위, 고통과 착취, 공동체의 파괴와 힘없는 자의 절박함에 대한 것이다. 인권투쟁이 약자의 것임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1967년에는 평생의 동료인 장 모르와 함께 <행운아>를 냈다. 버거도 산 적이 있는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평생 그곳 촌사람들의 건강을 지킨 의사로 살았던 시골의사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보여준 책이었다. 그 뒤에 낸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도 모르와의 공동작업이었다. 70년대에는 스위스 감독 알랭 타네의 영화들을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80년대에는 유럽 시골의 농부가 도시로 이주하면서 겪는 가난을 다룬 3부작 소설인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를 썼다. 1980년에 쓴 <본다는 것의 의미>에는 수많은 동물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왜 동물을 보는가?’라는 글이 있다. 그 밖에도 시위, 농민, 혁명, 의학, 이주민, 영화 등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은 1995년에 쓴 <결혼을 향하여>다.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에이즈에 걸린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을 담은 그 작품은 버거가 자신의 유일한 며느리가 에이즈 관련 병으로 죽었을 때 쓴 것이어서 자서전적인 책이 되었다. 비록 며느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그 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소설을 완성한 뒤에도 그것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또 <킹: 거리의 이야기>(1998)도 좋아한다. 바르셀로나 비슷한 지중해 어느 도시 외곽의 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무단거주 캠프를 배경으로 하는 그 소설은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을 다룬 3부작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노숙인 공동체의 24시간을 다루는데 그 화자는 한마리 개인 킹이다. 킹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쳐 살의 온기를 나누는 노숙인 부부의 수호자다. ‘경험만이 진실한 지식의 터전’ 그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회과학이나 박애 차원에서는 많이 연구되지만 대체로 목소리가 없는 주제”로 “나에게 접근을 요구했고 나는 그것에 사로잡혔다.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특권층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절대 잊지 않기 때문에 용감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므로 내가 책을 쓰는 것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 속하지만 전에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던 어떤 작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 때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에너지를 가지고 삶의 투쟁을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이 소설로 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설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삶의 구석구석에 들어가 직접 체험하면서도 언제나 기본적인 원칙과 공감을 지켰다. 그의 이야기 정치는 단순히 종말론의 예언자로서 부르짖는 웅변이나 명문이 아니라, 언제나 종말의 희생자들 편에 서고자 하는 소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60년 동안의 집필 생활에서 항상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 대응한 그에게 경험은 가장 진실한 지식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지식은 결국 어떤 것이든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 항상 다시 경험으로 이끌어졌다. 그는 하늘의 고상한 예언자가 아니라 땅의 소박한 체험자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깊은 감동을 준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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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9, 2020 at 07:4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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